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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습니다. 미안합니다. 그리고 기쁩니다
진 복남
중앙 펜실베니아 한인회 초대 회장
한인사회 여러분 안녕하
십니까? 그리고 한인회
의 일을 맡아 고생하
시는 여러분! 정말 감사합
니다. 이 지역 한인회
를 구성해
서 초대 회장직
을 지냈던 사람으
로서는 너무 인사가 늦었습
니다. 그 동안 나대로
는 보람있
는 나날들
을 만들어 가느라 바쁘게 보냈습
니다만 이 지역 한인회
의 일에 무관심
했던 것 같아 제삼 미안하
다는 생각을 합니다.
제가 한인회
의 일을 맡아 뛰던 때는 벌써 30여년이 지나, 지금과는 상황이 전혀 달랐습
니다만 한인회 창설과
정과 초기 한인회
의 어려움, 모국 국립무
용단 미주순
회 최초공
연, FM 한국어 방송 등 몇 가지 회고를 해봅니
다.
1972년 9월 “추석날” 이 지역에 거주하
는 동포 75명이 마켓 스퀘어 한인장
로교회의 회관에
서 처음으
로 모임을 가졌습
니다. 대다수가 국제결
혼한 여성들
과 그들의 배우자
들이었고 의사 6명, 대학교수 4명, 주정부 공무원 2명, 육군 간호사 1명 등 다양한 직업과 계층의 분들이
었고,
York, Lancaster,
Lebanon 지역 등
Harrisburg를 중심으
로 50
mile 이내의 여러 지역에
서 오셨습
니다. 우리민족의 대명절 중 하나인 “추석날” 서로를 소개하
고 안부를 나누면
서 그 동안 쌓이고 쌓였던 고독감, 문화적 사회적
으로 전혀 다른 문화권 속에 살면서 당하는 서러움
과 차별을 다 털어놓
고, 울기도 웃기도 했습니
다. 또 서로 위로하
고 격려도 했습니
다. 직업이나 계층을 넘어선 형제자
매가 만난 기쁨으
로 서로들 꼬옥 잡은 손을 놓지를 못했습
니다. 이날 마련된 코카콜
라와 던킨 도우넛
을 먹으면
서 뉴욬 총영사
관에서 빌려온 영화 두 편을 감상했
습니다.
6·25 한국동
란과 잘 살아보
자고 팔을 걷어붙
인 새마을
운동에 관한 영화와 뉴스였
습니다. 이 영화들
을 통해서
6·25 동란의 비참했
던 광경들
과, 당시로서는 최근에 시작된 새마을
운동과 경제발
전을 보면서 많은 분들이 울었고 또 웃었습
니다.
이 자리에 모였던 여러분
이 이구동
성으로 이런 모임을 자주 가지기
를 원했고, 이 자리에
서 이렇게 중앙 펜실베
니아 초대 한인회
가 출범했
습니다.
1975년 이후부
터 이민자
의 수가 급속도
로 늘어나
면서 한인회
의 역할은 계속 불어났
습니다. 이민오신 분들은 대부분
이 가족초
청이민이 많았고 그 중에도 국제결
혼한 분들의 가족초
청이민이 많았으
며, 취업이민자는 극소수
였습니다. 이 당시, 한인회의 업무는 가족초
청의 이민서
류 작성, 호적등본의 번역 및 공증, 재정보증서류 작성, 수속 중 문제가 있는 서류가 접수되
지 않고 반려된 경우 미국 상원의
원, 하원의원에게 도움을 요청하
는 편지를 쓰는 일, 특히
6·25 때 호적이 소실되
거나 없어진 분들의 가호적 등을 이민국
에 가서 설명하
고 통역하
는 일, 이민 올 때의 신체검
사에서 결핵양
성반응을 보인 자들은 목적지
에 도착하
면 즉시 보건소
에 가서
X-ray 사진을 보이고 90일간의 약을 타 먹어야 하는데 이분들
을 위한 통역, 그 외에도 건강상
의 문제가 있는 분들을 보건소
나 병원으
로 안내하
고 통역하
는 일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고 복잡한 것들이
었습니다. 당사자 본인에
게는 꼭 필요한 일이지
만 아무도 해줄 수 없는 일들을 한인회
가 맡을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
다. 그래서 일하는 보람도 컸습니
다.
1976년 미합중
국 건국 200주년 기념행
사의 일환으
로 한국에
서도 유명한 국립민
속무용단의 단원 약 60여명과 수행원
들이 축하공
연을 위해 미국에 왔습니
다.
중앙 펜실베
니아 한인회
는 미국 동부지
역에서 제일 먼저 조직된 것으로 New
York 총영사관에도 잘 알려져 있었으
며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습
니다. 한인회 모임이 있을 때마다 교민담
당 영사가 늘 관심을 가지고 한국영
화, 한국의 발전에 관한 책자들, 교민들에게 필요한 정보와 서류들
을 꼼꼼히 챙겨 보내주
었습니다. 그리고 이 지역 교민 가운데
서 자녀교
육, 노부모에 대한 효도 등에 지극했
던 분을 한인사
회에서 추천하
여 상을 받기도 했고, 여러 가지 공로를 인정하
여 당시 한국의 김종필 국무총
리로부터 감사장
도 받았습
니다. 어떻든 중앙 펜실베
니아 한인회
가 널리 알려진 때고, 또 지리적
으로도 동부지
역의 중심에 위치한 곳이어
서 한국 국립무
용단의 미국 전국 순회공
연의 첫 공연장
소로
Harrisburg가 선정된 것입니
다. 당시 대도시
들에 한인회
가 구성되
어 있었는
데도 이 곳
Harrisburg로 무용단
이 먼저 온다는 영사관 통보를 받고 당황했
던 기억이 납니다. 소요경비는 전액 한국정
부에서 부담했
으나 많은 교포들
이 민박을 책임졌
으며, 공연장소 (주정부 공연장
State Forum:
3-4,000명 수용), 매스콤을 통한 홍보활
동, 초청인사 선정과 초청장 발송(주정부 공무원 및 각급 기관장
과 주 상하원 의원, 헤리스버그 시장과 시의원 등),
Harrisburg 시장의 환영사 부탁 등 한인사
회 여러분
의 헌신적
인 협조와 노력으
로 모든 준비가 진행되
었습니다. 미국 독립기
념일(7원4일) 이틀 전에
J.F.K. 국제공항에 도착한 한국 무용단 일행이 두 대의
Greyhound bus에 악기들
과 짐을 싣고 5시간 이상 걸려서 이 곳
Harrisburg에 도착했
습니다. 공연책임자들과 수행원
들, 짐들은 Hotel에, 공연단원들은 대부분 민박가
정으로 모셨습
니다. 다음날 오후 7시 조 선영 박사의 진행으
로
Harrisburg 시장의 환영인
사에 이어 막이 오르자 호화찬
란한 무용가
들의 자태와 현란한 의상에 우레같
은 박수와
wonderful
wonderful하는 찬사가 관중석 사방에
서 터져 나왔습
니다. 이 지역의
Radio 방송이나 TV에도 물론 크게 방영되
었습니다. 다음날은 무용단
원들과 한국교
민들이 태극기
를 흔들면
서 시가행
렬을 했는데, 많은 관중들
이 나와 행렬을 지켜보
기도, 더러는 함께 동참도 했고 특히 한국전 참전용
사들이 많이 참여했
습니다. 한국의 위상과 전통문
화를 미주에 소개하
고, 재미교포들의 가슴에 자신감
을 심어주
는 행사였
습니다.
당시는 매주 토요일 9시에서 10시까지 한 시간동
안 이 곳
Market Square 한
인장로교회에서 운영하
는 FM 방송을 통해 교회와 한인회
가 “The
Land of
Morning Calm 조용
한 아침의 나라” 한국말 방송을 했습니
다. 9시가 되면 “동해물과 백두산
이-”하고 애국가
와 한국민
요 아리랑
이 나오고, 목사님의 신앙생
활의 묵상과 찬송에 이어 한국소
식, 교포사회소식, 이민생활정보 등 다양한 프로그
램으로 교포사
회에 사랑과 정서적 도움을 많이 주었습
니다. 이 방송은 약 90 마일 이내에 거주하
는 교포들
은 물론 미국사
람들도 많이 청취했
고 좋은 평을 받았습
니다. 이 방송을 계획하
고 시작할 때부터 와싱턴
의 미국의 소리 (The
Voice of
America) 방송으로 유명한 홍 양보 아나운
서가 매주 토요일 먼길을 오셔서 방송을 도와주
셨습니다.
이와같이 이 지역 초창기 이민사
회의 중앙 펜실베
니아 한인회
는 시작되
었고 서로들 도우면
서 잘 되어갔
습니다만 1980년대 후반에 와서 이 곳 한인회
는 예기치 못한 어려움
에 빠지고 맙니다. 그 후로도 몇 차례 어려운 고비를 겪은 것으로 압니다
만, 그럴 때마다 지난 일들을 거울삼
아 다함께 힘을 모아 현명하
게 어려움
을 이겨내
어 왔습니
다. 이제 이 곳 한인회
도 33년의 믿음직
한 장년으
로 성장했
습니다.
그 동안 세월이 많이 흘렀고 이 곳 한인사
회의 사정도 많이 변했습
니다. 저도 이제 나이 든 할아버
지가 되었습
니다만 이 지역 한인사
회의 발전을 위하는 마음만
은 변함이 없습니
다.
이번 제13대 한인회
가 젊은 한인회,
Korean-American
1.5세, 2세, 3세를 위한 한인회
로 발돋움
하겠다는 생각에 저로서
는 적극 찬동합
니다. 미국사회에 뿌리내
린 젊은
Korean-American들
의 결속된 역량이 한인사
회의 튼튼한 바탕으
로 자리할 때 우리의 노력은 빛을 보게되
는 것이라 생각합
니다.
한인회 여러분! 한인사회 여러분! 여러분이 한인회
의 주인임
을 잊지 말고 적극적
으로 나설 때라고 생각합
니다. 그러면 틀림없
이 미국사
회에서 힘있고 자랑스
러운
Korean-American이 될 수 있다고 저는 믿습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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