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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직장생활
최 루이스 (Louise Choi)
나는 평범한 주부이
며 두 아이를 둔 엄마이
자 열심히 일하는 직장인
이다. 부모님 따라 미국 온지 햇수로 벌써 31년이라는 세월이 지났다. 내가 성인이 되어서 부모가 되고 미국 땅에 정착했
다는 것이 참으로 믿어지
지 않는다. 아직도 30년이 훨씬 넘는 어린 시절에 헤어진 친구들
의 얼굴이 생생하
게 기억난
다. 보고 싶고 그립다. 그들도 나를 기억하
고 있을까? 기회가 된다면 만나보
고 싶다는 생각도 있다.
나의 하루의 3분의 1이 좀 넘는 시간을, 맑은 정신으
로 깨어있
는 시간의 대부분
을 직장에
서 보내고 있으니 직장생
활은 내 삶에 큰 비중을 차지한
다.
우체국 공무원
이 된지도 벌써 7년이 되어간
다. 35세가 훨씬 넘어서 직업을 바꾸어 직장에 도전한
다는 게 많이 망설여
졌다.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
과 설레임
이 서로 교차했
다. 내 사업에
만 골몰하
다가 직장을 갖기로 결정을 내린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
이 직장생
활을 하다가 자영사
업으로 변경하
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반대로 내 사업을 하면서 내 방식대
로 운영방
법을 배우고 터득해
가며 지킨 자리를 뒤로하
고 직장에 뛰어들
었다. 생활의 변화를 원했고, 안전한 직장이 필요했
다. 처음 직장에 가서 적응될 때까지
는 너무너
무 힘들었
다. 내가 왜 이렇게 힘든 일을 자초해
서 이 고생을 할까 하는 마음에 포기하
고 싶은 생각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그렇게 견디고 일한 탓에 7년이 다 되가는 지금은 손에 많이 익어 별 불편을 못 느끼고 있다. 내가 항상 이 일을 해왔던 것처럼 요새는 아주 여유 있게 일한다.
내가 힘들어 할 때는 늘 그늘같
이 옆에 있는 남편이 위로해
주고 북돋아 준다. 그리고 아이들
이 항상 옆에 있기에 지탱할 수 있었다. 나를 믿고 지켜보
는 이들이 내 주변에 많았기
에 그들에
게 실망을 주고싶
지 않았다. 무엇보다도나 자신에
게 실망을 줄 수는 없었다. 그렇게 나 자신과
의 싸움이 컸다. 낙오자가 된다는 것이 정말 싫었기
에….
처음에는 우체국 배달원
으로 시작해
서 지금은 안에서 근무하
고 있다. 서비스업종에서 일했던 경험이 현재 직업에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모든 일이 그러하
듯이 손에 익으면 know
how가 생기기 마련이
다. 이 know
how를 잘 활용하
면 힘들 것이 없고 오히려 일하는 게 즐겁게 된다. 미국인들인 직장동
료들과도 무관하
게 지나고 있는 편이다. 나도 한 사람의 미국인
으로서.
그런데 나의 직장생
활에서 그들과
는 어울릴 수 없는 일이 한가지 있다. 점심시간이다. 한국음식에 배어있
는 나의 입맛은 빵을 거부할 때가 많다. 그래서 점심은 한식으
로 도시락
을 싸 가는 날이 80%가 넘는다. 냄새 날만한 음식은 다 가져가 혼자 즐겨 먹는다. 직장 동료들
이 코를 찡그리
든 말든 상관없
이 그들에
게 한식을 소개한
지도 벌써 여러 해다. 지금은 이상한 음식 냄새가 풍기면 내가 점심 먹는 줄 알 정도다. 어떤 사람들
은 냄새나
는 한국음
식 먹는 것에 동감하
지 않겠지
만 내 생각은 이렇다. 내가 노랑머
리에 파란 눈이 아닌 만큼, 보이든 안보이
든 어딘가
에 차별은 있다. 그런 반면에 내가 누구며, 어디에서 왔고, 어떤 음식을 먹고사
는 사람인
지는 보여줄 필요가 있다. 나는 한국사
람이라는 걸.
내가 한국풍
습을 지키고 내 아이들
에게 가르쳐
주지는 못해도 우리는 한국인
이다. 그래도 내 나름대
로 한국계 미국인
으로서 충실한 직장인
임을 자부하
며, 끊임없이 노력하
는 삶을 살고싶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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