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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능성을 계발하자
목사
강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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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조그만
잡지에 실린 이야기다. 지금부터 120년
전 어느 교회의 목사님이 말씀하셨다. “천국이 가까웠습니다. 인간은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습니다” 그러자 한 사람이 일어나서 말했다.
“목사님 아직 인간은 할 일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앞으로
50년 안에 대단한 것을 발명할 것이 틀림이 없습니다.”
“인간이 더 이상 무엇을 한단 말이요” “저는 인간이 하늘을 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무엇이라고요 당신은 알지못합니다. 하늘을 날 수 있는 일은 오직 천사에게만 허락된 것을, 당신의
말은 하나님을 모욕하는 말이요” 목사님은 몹시 화를 내며 다시는 그런 소리 하지말라고
다짐을 하는 것이다. 과연
그 목사님은 누구였을까? 바로 비행기를 발명한 라이트 형제의 아버지였다.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부여하신 그 엄청난 잠재력 가능성을 부인하면서까지
아버지가 하나님을 맹신하는 동안 아들들은 하나님이 주신 자유의
날개를 마음껏 펼쳐 보이고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시되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하셨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창 1장 26절).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은 무한한 하나님의
가능성을 물려받은 존재다. 그러기에 인간으로
하여금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셨다. 물
리학자, 생물학자, 인류학자,
역사학자, 의사 등 수많은
지성인들이 오랜 세월동안 인간을 탐구해 왔지만 연구하면
연구할수록 더욱 엄청난 경이와 수수께끼를 만나고 있다. 인간이 경이로운 존재라는 것은
곧 하나님의 엄청난
힘이 우리 인간들에게 미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엄청난
능력을 우리는 다른 말로 잠재력이라고 한다. 있
는 힘이지만 사용하지 않기에 나타나지 않는 능력이다. 인
간이 일생을 살아가면서 자신에게
부여된 능력의 불과 5% 내
외를 사용한다고 한다. 나
머지 95%는
그대로 사장(死
藏)이
되고 마는 잠재되어 있는 힘이다. 잠
재력은 우리가 사용하기만 하면 능력으로 나타날 수 있는 힘이다. 단
지 우리가 사용하지 않으므로 그대로 있을 뿐이다. 우
리들이 소원하며 바라고 있는
일들은 때로는 이루어지지만 때로는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그
러나 믿음은 이루어진다. 잠
재력은 바로 이런 믿음을 말하는
것이다. 그
래서 예수님은 “너희들에게 믿음이 있다면 이 산더러 저리로 옮겨가라
해도 능히 그리될 것이다” 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우
리들이 가지고 있는 잠재적인 능력을 우리가 제대로 사용한다면 우리들이 이루고
있는 이 사회는 사랑으로 가득할 것이다. 우
리 모두가 가진 것이 너무 많아 서로 가진 것을 나누어 주기에도 바쁠 것이다. 사
랑은 주는 것이다. 하
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되었기에 사랑이신 하나님처럼 인간들도 서로 주고 베풀기에
힘쓰게 될 것이다. 무
한한 잠재력을 사용하여 하나님께서 다스리고 정복하라고 하신 이 창조를 통하여 얻게 된 것들을 나누고 베풀 것이다. 그
런 세상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미 허락하셨다.
우
리는 주어진 능력을 제한시켰다. 무
한한 가능성을 계발하지 않고
게으런 종처럼 가능성을 단 5% 내
로 제한시켜 버렸다. 주
어진 가능성을 계발하면 넘치고 부족함이 없다. 가
능성을 계발하여 사용한다면 모자람이 없을 것이다. 모
자람이 없으면 투쟁하지 않는다. 투
쟁은 모자라기 때문에 갖기 위해서 싸우는 것이다. 가
능성을 계발하기 위한 노력과 힘을 들이지 않고 하나님으로부터 미리 받았음에도 노력하지 않고 계발하지 않음으로 오는 부족함을
싸워서 뺏으려고
하기에 어렵고 힘든 세상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그
러나 우리가 한 가지 짚고 가야 할 일이 있다. 분명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무한한 가능성을
부여받았다. 그러나 그 가능성이 제한 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그것은 죄라고 하는 것이다. 우리 모두에게는 죄라고 하는 속성이
있다. 이것은 누구든지 가지고 태어났다. 독
사는 사람을 물어서 독사가 아니다. 날 때부터 입에 독을 품고 태어났기에 독사가 된
것이다. 인간들도 안타깝게도 죄라고 하는 품성을
가지고 태어났다. 그 죄를 짓고자 하는 죄의 품성이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부여하신
무한한 가능성을 제한시키고
있다. 날 때부터 가지고 난 죄는
인간
스스로 어찌하지 못한다. 내가 노력해서 받은 품성이 아니라 내 의지와는 관계없이 받은
품성이다. 내가 원해서 받은 것이 아니기에 내가 원한다고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나에게
죄의 품성을 부여한 죄의 원천을 능히 제압할 수 있는 새로운
존재를 우리는 필요하다. 그
죄의 원천이 사라진다면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은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고 하나님의 무한한 능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죄의
원천을 제압하는 힘이 우리를 살리는 힘이다. 그
힘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힘인데 이미 죄로 물들은 우리들은 그 힘을 사용할
수 없다. 죄
로 물들지 않은 자, 그
분이 힘이고 능력이다. 우
리는 그 분을 절대자라고 부르기도
하고 하나님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창조자라고 부리기도 하는데 그 분의 이름은 예수다. 그
이름이 능력이다. 그
래서 우리는 그 이름을
힘입어서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죄의 원천을 제압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무한한 가능성을 사용하여야 한다.
그
가능성을 사용한다면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동포사회는 아름다울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 고장은 본래 우리들의 터전이 아니다. 그러기에 살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익숙한 것을 가지고도 불과 5%의
가능성을 가지고 살기에 늘 부족하고 어려운데 익숙하지 못한
것을 가지고 5%의 능력을 가지고 살아가자니 얼마나 힘이 들고 어려운가? 당연히 싸울 수밖에 없다. 우리는 동포들끼리 도우지는 못할망정 왜
그렇게 서로 헐뜯고 사느냐고
서로 비방을 하지만 우리의 현실이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다. 본래 우리들에게 주어진
서로 사랑하며 나누며
베풀고 살기를 원한다면 오직 한 가지, 무한한 가능성을 제한하고 있는 죄의 품성을
걷어버리고 애당초 주신
것을 다시 찾는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회복이라고 하고 부흥(Revival)이라고 한다.
우리들의 성품이 본래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되고 Revival되기를 희망하자. 돌아갈
수 있는 힘, 부흥될 수 있는 힘, 그
힘을
사모하고 그 힘의 원천인 예수를 부르자. 회복되어 넘치도록 풍족한 것들을 서로 나누며
넉넉한 마음으로 동포를 가슴으로
안고 감격의 노래를 부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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